추석 연휴 기간 도심 곳곳 현수막 ‘눈살’…건널목 앞에도 내걸려공분
옥외광고물법·정당법 충돌…정부·법제처 “옥외광고물법 적용” 유권해석
평택시의회, 추석 현수막 비용 복지시설에 기탁 솔선수범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가족만 모여도 행복한 한가위, 사랑 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여수시민 여러분 행복하세요,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 고향입니다. 덕담과 정을 나누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여수시민 행복만 바라봅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지역 곳곳에 걸려있던 현수막 문구들이다. 이 기간 여수지역 주요 거리에는 지역 국회의원과 내년 총선 출마예정자, 시·도의원 등 정치인들이 무분별하게 내건 현수막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현수막에 자신의 얼굴 사진까지 넣었다. 권오봉 여수시장 명의의 추석 인사 현수막도 걸렸다. 육교 등에는 경도 유블레스 오션 2차 분양 광고 현수막이 무차별적으로 걸렸다.

▲ 건널목에 걸려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는 현수막. (사진=페이스북 캡처)

지난 8일 페이스북에는 더불어민주당 여수시 을지역위원회 정기명 위원장이 건널목에 내건 현수막을 성토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정 위원장은 해당 글에 댓글을 달아 사과하고 철거했으나 공분을 피하지 못했다. 이용주·주승용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주철현·정기명 여수시 갑·을 지역위원장은 평소에도 시민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수막을 시시때때로 내걸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옥외광고물법 제3·4조에 따르면 허가를 받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고 표시방법을 위반한 현수막은 모두 불법으로 지정 게시대를 이용해야 한다.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고 내건 현수막 등 광고물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라는 말이다.

같은 법 8조에 따라 정치 현수막은 제한적으로 예외를 두기도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라 선거 홍보 등을 위해 설치하는 현수막, 단체나 개인의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집회’에 사용되는 비영리 목적의 현수막이 그에 해당한다. 안전사고 예방‧교통 안내‧긴급사고 안내‧미아 찾기‧교통사고 목격자 찾기 등 공공캠페인이나 주민에게 필요한 행정 안내 등 공익적 목적의 현수막도 예외다.

정치인들은 현수막 게시는 정치적 현안에 대한 의견을 홍보하는 일로 정당법에 따라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정당법 제37조 제2항은 ‘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 시설물 광고 등을 이용해 홍보하는 행위는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수막을 두고 옥외광고물법과 정당법이 충돌하자 2013년 안전행정부(지금의 행정안전부)와 법제처는 ‘정당 현수막도 다른 광고 현수막과 똑같이 옥외광고물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정당 활동은 보장하되 이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 추석 연휴 기간 문수삼거리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더욱이 정치인이나 정당이 내건 현수막 대부분은 통상적인 정당·정치 활동이라고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조국은 유죄다. 즉각 임명 철회하라’, ‘우리가 바라는 조국은 당신이 아닙니다’를 정책홍보, 행사·집회 관련 현수막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중앙동 시민 김모씨는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야 할 정치인들이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볼썽사납다”며 “즐거운 추석 보내라면서 정작 본인들 때문에 짜증 나는 추석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수시는 16일 정당·정치인들의 추석 인사 현수막 철거에 들어갔다.

이 같은 불법 현수막은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 방해는 물론, 환경 쓰레기 양산과 더불어 도심 미관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의 피로도도 높은 상황이다. 특히 정치인‧정당이 무질서하게 내건 현수막은 단속의 형평성에 대한 불만과 민원, 특권 의식의 산물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꾸준하다.

여수시가 올해 9월 5일 기준 수거한 불법 현수막은 총 1만9300여 개다. 2018년에는 3만9000여 개, 2017년에는 2만3000여 개의 불법 현수막이 수거됐다. 현수막 공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수치다. 이 중 여수시가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여수시는 정당에 현수막 게시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회엔 불법 현수막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불법 광고물 적발 시 현행 최고 500만 원인 과태료를 ’1000만 원‘까지 두 배 올리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추석 연휴 기간 여서로타리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 추석 연휴 기간 서교동 육교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평택시의회, 명절 인사 현수막 게시하지 않기로 결의
여수시, 불법 유동 광고물 자동전화 발신 시스템 도입

정치인들의 불법 현수막에 대한 시민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자 대책 마련에 나선 지자체들도 있다. 평택시의회는 올 설 명절 연휴 기간에 쾌적한 거리 조성과 선진 옥외광고물 문화 정착을 위해 새해 인사 등 인사말이 적힌 현수막을 게시하지 않기로 하고 실행했다. 홍보비용 188만 5000원은 지역 복지시설에 기부했다. 평택시의회는 이번 추석에도 명절 홍보 현수막 비용 170만 원을 모아 지역 복지시설에 냈다. 성금 기탁에는 평택시장도 동참해 현수막 비용을 냈다.

전주시는 정당과 정치인·공공기관 현수막에 대한 느슨한 단속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반상업용 불법 광고물과 같은 기준으로 철거·과태료 부과 등 행정 처분키로 했다. 지난 2017년 인천시 남동구는 추석 때 정치인들의 명절 현수막을 불법 광고로 규정, 5800만 원이 넘는 과태료를 물리기도 했다.

▲ 추석 연휴 기간 소호동에 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의회 송하진 의원은 지난 4월 제192회 임시회 시정질문을 통해 여수시의 옥외광고물 행정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했다. 송 의원은 “도시미관을 위해 관리돼야 할 옥외광고물이 불법적으로 게시되고, 솔선수범해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조차 선거 때나 명절 때만 되면 불법 현수막 게시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여수시는 불법 광고물을 게시한 광고주에게 전화를 반복적으로 걸어 경고 멘트를 보내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는 9월부터 불법 유동 광고물 자동전화 발신 시스템을 도입해 현수막과 전단지, 명함 등에 표시된 전화번호에 경고 신호를 반복해 보내는 형식으로 사전 단속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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