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일 이야포 현장서 위령 상징조형물 제막식 등 열려
70년 넘도록 ‘폭격 이유·비극적 죽음’ 진상 규명 안 돼

여수 안도 이야포 해변.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여수 안도 이야포 해변.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1950년 7월 26일 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에 피신한 마을 주민 수백 명에게 미군이 폭격과 기관총 사격을 가한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8일 노근리평화공원에서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열린 ‘노근리사건 희생자 추도식’에 영상 추도사를 통해 ““노근리 사건은 6·25전쟁이 만든 대한민국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아픔”이라며 “전쟁 중 우리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국민을 오랫동안 밝혀내지 못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무총리로서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런데 1950년 8월 3일, 여수시 남면 ‘이야포’와 ‘두룩여’에서도 노근리와 꼭 닮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부산에서 피난민 수백 명을 태운 피난선이 여수 안도에 도착했다. 당시 미군이 피난선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해 150여 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부상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8월 9일 여수 두룩여(남면 횡간도~금오도 사이) 해상에서 조기잡이 어선 100여 척이 역시 미군 공중 공격을 받아 많은 어부들이 사망(최소 14명)하고 부상을 당했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야포’와 ‘두룩여’ 사건의 피해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는 결정문에서 진실규명 대상자 중 사실이 확인이 된 희생자는 안도 이야포 폭격사건 5명과 두룩여 해상 폭격사건 5명 등 총 10명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조사가 지극히 피상적이고 소극적으로 이뤄졌고 국가의 조사에 의해 사건이 축소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정부의 홍보 부족과 억울함을 탄원할 방법이나 절차를 몰라 기회를 놓친 피해자 가족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70년이 넘도록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은 남해안의 작은 섬이 폭격당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고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의 진상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
 

지난해 열린 ‘이야포 미군 폭격사건 추모식’ 행사. (사진=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희생자 위령사업추진위원회 제공)
지난해 열린 ‘이야포 미군 폭격사건 추모식’ 행사. (사진=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희생자 위령사업추진위원회 제공)

올해 이야포 미군기 폭격사건 71주년을 맞아 안도 이야포 현장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희생자 위령사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위원장 엄길수)는 여수시와 여수시의회 후원으로 1950년 8월 3일 이야포 해변에서 있었던 미군기 폭격사건 피해자 추모제를 내달 3일 이야포 현장에서 갖는다고 28일 밝혔다.

이날 추모제는 식전행사로 희생자 넋 올리기 살풀이춤을 여수시립국악단이 펼치고, 최병수 작가가 만든 위령 상징조형물 제막식도 갖는다. 이와 함께 이야포 추모제 경과와 위령상징 조형물 제작 설치 배경, 추모사·추모시 낭독, 이야포·두룩여 미군 폭격사건 민간인 생존자 증언이 이어진다.

엄길수 위원장은 “관련 조례 제정 이후 갖는 첫 추모 행사로, 71년 전 발생한 억울한 죽음을 민‧관이 함께 기리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창곤 여수시 의장은 “이야포 관련 조례 제정 이후 처음 갖는 이번 추모 행사가 해원의 길을 여는 시작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수시의회는 지난달 ‘이야포‧두룩여 해상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어 ‘여수시 한국전쟁 중 남면 이야포‧두룩여 해상 미군폭격 사건 민간인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추진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박성미 의원)를 구성했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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