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뚜렷한 색채와 생명력 주는 곳, 연록의 초록빛 바다 터널 장관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 달래줘, 불두화 꽃 보며 잠시 일상에 벗어나
언제나 지친 몸 보듬어 주는 어머니 같은 품, 다시 걸을 수 있는 힘 줘

선암사는 사계절 뚜렷한 색채와 생명력이 있는 곳. 오월의 이곳은 초록 바다가 만들어진다.(사진=김종호기자)
선암사는 사계절 뚜렷한 색채와 생명력이 있는 곳. 오월의 이곳은 초록 바다가 만들어진다.(사진=김종호기자)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선암사로 가라고 했다. 시인은 ‘눈물이 날 정도로 숨이 멎을 듯한 현실에서 벗어나 선암사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라’ 말한다.

지난 5일 '어린이날'. 아이들의 세상이지만 코로나19가 더욱 확산하면서 불안과 공포의 일상이 되어 버린 날. 마스크와 한 몸이 되어 버린 아이들의 밝고 맑은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불안과 답답함을 피해 순천 선암사로 향했다. 계절마다 뚜렷한 색채와 생명력을 주는 곳.
 

‘뾰족하고 무거운 마음을 얹으면 탑은 쓰러지고 말 것이다’라는 작지만 큰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다.(사진=김종호기자)
‘뾰족하고 무거운 마음을 얹으면 탑은 쓰러지고 말 것이다’라는 작지만 큰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다.(사진=김종호기자)

아직은 여름이라 하지 못하고 늦봄과 초여름의 중간 사이 애매하지만, 또 다른 계절의 멋을 주고 있다.

선암사 초입은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연록의 빛깔들이 마치 초록 바다같이 긴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그 바닷속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한 줄기 빛은 나뭇잎 사이로  또 하나의 자연을 만들어낸다. 갖가지 그림이 그려지고 모든 것들이 이 순간에 몰입된다.
 

걷다 보면 등에 땀이 기분 좋게 배일 무렵, 이제는 쉬어야 한다는 의미다. 나무의자에 앉아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사진=김종호기자)
걷다 보면 등에 땀이 기분 좋게 배일 무렵, 이제는 쉬어야 한다는 의미다. 나무의자에 앉아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사진=김종호기자)

그렇게 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잠시 옆을 보면 허물어진 흙더미 속으로 나무뿌리가 마치 기어 다니는 형상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네 삶을 보는 듯하다.

저만치서 먼저 올라간 이들이 내려온다. 아이들이 얼굴엔 마스크를 착용하고 놀이공원이 아닌 선암사로 피해서 온 것 같아 왠지 마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세월의 모든 것을 안고 서 있는 장승 곁에 조그만 돌탑들이 세워져 있다. 한돌 쌓아 놓은 누군가의 진심이 모여 있다. ‘뾰족하고 무거운 마음을 얹으면 탑은 쓰러지고 말 것이다’라는 작지만 큰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다.
 

.스님들도 바쁜 일상이다, 석가탄신일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김종호기자)
.스님들도 바쁜 일상이다, 석가탄신일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김종호기자)

그렇게 얼마를 자연 속으로 가다 보니 스님들이 5월 19일 부처님 오신 날을 위해 분주한 손놀림을 하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로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를 기원하는 동안 계곡의 시원한 물길들이 쉼 없이 내려온다. 노자의 ‘성산 약수’의 뜻을 다시 한번 품어 걷다 보면 등에 땀이 기분 좋게 배일 무렵, 이제는 쉬어야 한다는 의미다.

‘불두화’의 송이가 늘어지게 핀 나무 아래 조그만 나무 의자에 앉아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석가탄신일 전후에 꽃이 피고, 부처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불두화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
 

석가탄신일 전후에 꽃이 피고, 부처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불두화라고 한다. (사진=김종호기자)
석가탄신일 전후에 꽃이 피고, 부처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불두화라고 한다. (사진=김종호기자)

다시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 불로 모신 건물이다. 이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현종 원년(1660년)에 다시 지었고, 영조 42년(1766년)에 또 화재로 없어졌다가 순조 24년(182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이미 오색등이 세워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듯이 무지개 색깔의 등들이 반긴다.

곧 자연스레 ‘해우소’를 찾았다. 깨끗하게 단장된 ‘뒷간’이라는 대문이 있다. 대궐과 같은 기와 집 형태의 건축물이다. 해우소는 단순히 대소변을 배출하는 곳이 아닌,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가는 곳이다. 선암사 해우소를 자주 찾아야 할 듯하다. 눈물이 날 때 선암사 해우소에서 실컷 울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 옆 ‘누운 소나무’는 여느 소나무와 달리 땅바닥을 기어가며 뻗어 나간다. 땅에 기어가듯 살아가는 소나무의 고통스러운 일생은 우리네 부모들과 닮았다.
 

 세상의 모든 것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듯이 무지개 색깔의 등들이 반긴다.(사진=김종호기자)
 세상의 모든 것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듯이 무지개 색깔의 등들이 반긴다.(사진=김종호기자)

내려오는 길에 승선교를 찾았다. 신선이 하늘로 오른다는 다리다. 보물로 지정된 이 다리는 다른 보조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아치형으로만 돌을 연결한 정교한 솜씨를 자랑한다. 다리의 부드럽고 둥근 천장 모양은 예술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고 석축에 나와 있는 용머리 조각 돌을 제거하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승선교는 아치형으로만 돌을 연결한 정교한 솜씨를 자랑한다. 다리의 부드럽고 둥근 천장 모양은 예술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사진=김종호기자) 
승선교는 아치형으로만 돌을 연결한 정교한 솜씨를 자랑한다. 다리의 부드럽고 둥근 천장 모양은 예술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사진=김종호기자) 

여전히 번뇌와 갈등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내려온 선암사를 뒤돌아 본다. 절을 감싸 안고 있는 깊은 산의 여름을 생각한다. 여름이 깊어지면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해 석 달 열흘 동안 온몸을 물들일 이곳. 어머님 품처럼 항상 보듬어 주는 곳이 ‘선암사’라는 생각이 마음 한 곁에 자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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