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광주서 노동자 기계에 끼여 숨져
노동계 ”철저한 원인 규명·중대재해법 개정“

▲ 여수국가산단 내 금호티앤엘 사업장. (사진=독자 제공)


지난 8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산업 현장에서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발생했고, 더욱이 이번 사망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 노동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여수국가산단 내 금호티앤엘(T&L) 사업장에서 석탄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도중 석탄 운송 장비에 몸이 끼여 30대 노동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지역 노동·시민단체가 ‘위험의 위주화가 부른 참극’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수사와 재발 방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오후 8시 4분경 여수시 낙포동 금호티앤엘 사업장에서 기계 정비 하청업체 ○○엔지니어링 직원 A(33) 씨가 석탄 운송 컨베이어 정비를 하다가 몸이 끼었다. A 씨는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에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돼 여천 전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A 씨는 동료와 함께 2인 1조로 컨베이어가 멈춘 이유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멈춘 컨베이어가 갑자기 작동해 다리가 끼이면서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호티앤엘 관계자는 “사고 경위 및 수습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라고 밝혔다.

합동 감식을 마친 경찰은 컨베이어가 갑자기 작동한 경위와 작업 중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여수지청도 곧바로 해당 사업장에 대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나섰다.

광주에서도 50대 공장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1일 오후 12시 42분경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 모 플라스틱 재생업체 직원 A(51·여)씨가 파쇄기에 신체 일부가 끼여 숨졌다. 이 업체는 상시 노동자가 10여 명 규모로 ‘3년 유예’ 대상이다.
 

▲ 11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폐플라스틱 재생업체에서 119구조대가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생원료로 가공하기 전 잘게 부수는 작업을 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이날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 숨졌다. (사진=광주 광산소방서 제공)


이와 관련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 여수시지부와 전남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 등 지역 노동·시민단체는 11일 성명을 내어 “해당 사업장에서는 2018년 8월에도 4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동 중인 컨베이어 운송 대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라며 “이번 사고는 태안 화력발전소 사내 하청노동자 故 김용균 청년노동자의 죽음과 똑 닮았다”라고 했다.

이들은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의 천박함은 항상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라며 “‘생산성 향상’이라는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먹이사슬의 희생양은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낮은 임금으로 버텨나가는 힘없는 노동자를 집어삼킨다”라고 했다.

단체들은 “산재 사고는 은폐되고 반복된다. 그리고 잊힌다.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함께 지역민께 사과하고 여수시와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은 사고 발생 시 투명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위해 노동자가 참여하는 합동 점검단을 운영할 것을 재차 요구한다”라고 했다. 이어 “여수지역 노동·시민단체는 청년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수국가산단 산업재해에 대한 특단의 대책 강구를 촉구했다.

지난 8일 김용균 씨와 같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고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알맹이가 빠진 반쪽짜리 법, 누더기 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어 보완 요구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 민주노총 여수시지부 최관식 지부장이 주철현 국회의원(여수갑) 사무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여수시지부)


애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이 빠진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경영책임자와 원청 처벌, 하한형 형사 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이 담겼다. 하지만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3년 유예는 물론 일터 괴롭힘에 의한 죽음, 발주처와 공무원 처벌 등은 배제되는 등 형사 처벌이나 벌금 기준이 매우 낮고 경영책임자의 면책 여지를 남겨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9년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55명, 이 가운데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인 미만으로 범위를 넓히면 사망자 10명 가운데 8명이 중소업체에서 나왔다. 이에 노동계는 죽음마저 차별하는 법이라며 당장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이날 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은 보수 야당과 재벌 자본에 굴복한 정부 여당이 합작해서 만든 누더기 법으로, 제정은 했으나 시행은 1년 뒤, 그마저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유예를 적용했다”라며 “제정하나 마나 빛 좋은 개살구 법이 됐다”라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부칙에 따라 ‘공포 후 1년 뒤’ 시행되고 법이 시행되더라도 상시 노동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3년 뒤’부터 적용받기 때문에 금호티앤엘과 광주의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 민주노총 여수시지부 임원들이 김회재 국회의원(여수을) 사무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여수시지부)


이들은 또 “또다시 노동자의 실수 또는 말단 관리자의 책임으로 돌릴 텐가. 벌금 몇 푼으로 젊은 청년노동자의 목숨을 대신할 텐가. 경영인 4개 단체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을 극구 반대하고 나선 이유가 이것인지 답하라”라고 요구했다.

여수상공회의소와 여수경영인협회, 여수국가산업단지경영자협의회, 여수산단건설업협의회 등 지역 경제계는 지난해 12월 18일 공동성명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넓고 기업의 의무도 추상적이어서 형법상 책임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입법 철회를 요구했다.

8일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통과되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강한 유감을 나타내며 보완을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중대재해법을 서둘러 입법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번 입법은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산재의 모든 책임을 기업에 지우고 과도한 형량을 부과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사후 엄벌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라며 “산재 예방을 위한 시스템과 시설에 대한 투자, 교육 및 인식 변화 등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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