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 근거로 삼는 여론조사에 대한 왜곡과 논쟁을 막기 위해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횡성군은 정책 및 사업 진행을 위한 요식행위 전락을 막기 위해 여론조사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 여수시청 홈페이지 캡처.


시 각종 여론조사 논란으로 신뢰성 떨어뜨려

여수시가 주요 정책 결정 근거로 이용하는 각종 여론조사가 갈등만 유발하고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뢰성과 객관성, 대표성 확보를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낭만포차 이전, 남산공원 개발 방식, 본 청사 별관 증축 등 지역 내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가 명확한 기준이 없어 조사방법과 결과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수시는 시 홈페이지나 모바일을 활용해 낭만포차 이전 장소나 남산공원 개발 방식 등 중요 현안과 여수상징문 현판 문안, 시 대표 브랜드 선정사업 및 네이밍 공모 등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물어 결정했다. 하지만 중요 정책을 사실상 여론조사 결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일부 시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논란이 일었고, 사업마다 시민 설문조사에 기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선 6기부터 장소 적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낭만포차 이전의 경우 이전·폐지를 원하는 응답자가 50.9%가 나와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장소 이전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는 휴대전화와 유선전화를 섞지 않고 낮 시간대 100% 유선전화로만 의견을 물어 시민 의견을 골고루 수렴했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립박물관 건립 후보지를 묻는 여론조사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여수 석보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박람회장은 이미 용도가 지정돼 있는데도 후보지로 포함됐다. 문제가 불거지자 시는 뒤늦게 2곳을 제외했다.

특히 시립박물관 후보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지 않아 일관성도 없다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시가 지난해 11월 27일부터 12월 7일까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여수시앱 시민소통광장) 결과 박물관 건립 추진방식에 대해서 기존 건물 리모델링에 시민 77%가 찬성했다. 건물 신축을 지지한 시민은 23%였다. 기존 건물을 고치면 적당한 장소로는 박람회장(주제관)이 70%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박물관 건물을 신축할 때도 박람회장이 35%로 가장 선호됐으며, 화장동 선사 유적공원(20%), 여수 석보(16%), 웅천 이순신공원(15%) 순이었다.

 

▲ 이순신공원 시립박물관 계획부지. (자료=여수시의회)
▲ 남산공원.


시는 공청회와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여수 석보’(麗水石堡)터를 박물관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전문가들의 현장 평가에서 이 후보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서 결국 이순신공원으로 결정, 오락가락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질문의 의도가 드러나는 설문조사도 있었다. 남산공원 개발 방식을 묻는 조사에서 도심 공원의 단점은 16자에 불과했다. 반면 관광형 공원의 단점은 71자로 4배 이상 부정적인 내용이 더 담겼다. 여수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최고의 ‘뷰 포인트’로 꼽히는 남산공원 조성사업은 응답자의 63.3%가 ‘자연형 도심 근린공원’을 선호한다는 결과에 따라 민간 자본을 유치한 ‘관광형’ 사업은 접었다.

이처럼 설문조사 문항과 방식이 논란을 불러오면서 신뢰는커녕 혼란과 갈등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수시의회 김승호(2020년 2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의원은 지난해 2월 제190회 임시회 10분 발언을 통해 시의 설문조사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일부 조사는 신뢰성 저하와 부정확한 정보 제공 등이 지적된다”라며 “설문조사 결과만으로 정책을 수립하면 행정의 중대한 과오와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여론 수렴 시 반드시 정확한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하고 관계 전문가와 주민대표인 의회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결정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남산공원 조성방안 정책을 두고 원거리 지역 주민의 의견이 대부분인 설문조사 내용을 반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시는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여론조사가 사업 대상지 인근 주민들보다 원거리 주민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설문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시민을 만나 사안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개별면접 조사가 이뤄진 만큼, 그 어떤 설문조사보다 공정성이 담보됐다고 했다.

 

▲ 본청 건물 뒤 별관 신축 예정 부지.


시는 지난 4월 본 청사 별관 증축 관련 시민 의견조사를 했다. 의견조사는 선거여론조사등록기관인 코리아정보리서치를 통해 지난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유선 전화면접조사로 이뤄졌다. 조사결과 분산된 청사를 한곳에 모아 별관을 증축하는 계획에 6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6월 17일 홍보자료를 냈다.

지난 7월 27일 여수시청 홈페이지 게시판 ‘여수시에 바란다’에는 ‘여수시청 증축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시청 별관 증축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는데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의문이라고 적었다. 그는 “여수시가 돈 들어갈 때가 많은데 증축이라니”라며 시민에게 설문조사를 공개하고 다시 하라고 요구했다.

시는 답변을 통해 설문조사는 여수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32명을 대상으로 유선 전화번호를 이용해 전화 조사로 진행했으며, 주민등록인구를 기반으로 성, 연령, 지역별 인구비례 할당해 실시했다고 했다. 설문조사는 최대한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선거여론조사를 수행했던 업체로 선정하고, 설문조사 문항이나 질문에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점검해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민선 7기 들어 여수시가 시행한 온·오프라인 여론조사는 20여 건이 넘는다. 1건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예산이 들어갔다.
 

▲ 지난 2015년 10월 15일 여수시 봉계동 여도초등학교 5학년 학생 10여 명이 여수시청 앞에서 여수시의 사립외고 설립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선 5·6기에도 여론조사 논란

민선 5·6기에도 여론조사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2015년 민선 6기 때 사립 외국어고 설립을 두고 지역 내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맞설 때 여수시가 진행한 여론조사가 왜곡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시는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85.4%가 사립외고 설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홍보했는데, 얼마 뒤에 민간단체가 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단체 조사에서 나타난 찬성률에 비해 시 측 조사 찬성률이 2배 이상 높아 왜곡 논란이 가중됐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사립외고 설립과 직접 연관성을 갖는 교사·학부모·학생 등 780명을 면접방식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7%포인트였다. 반면 여수시는 전화 자동응답 시스템을 통해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 지역사회연구소의 조사는 전체 1260명 가운데 780명이 답해 응답률이 62%를 보였으나, 여수시의 응답률은 8%대에 그쳤다.

2011년 민선 5기 역시 ‘역 명칭 개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자 여론조사를 했는데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설문지에서 반대 입장은 생략한 채 여수시의 입장을 설명하는 유도성 질문이 작성돼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 낭만포차.


규정·법령 마련해 논란 소지 차단

이 때문에 질문지의 편향성, 무응답 무시에서 오는 오류, 조사방식 오류 등에 따른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 여론조사에 대한 정확한 규정 및 법령을 마련해 논란 소지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립박물관 위치, 청사 별관 증축 등과 같이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있는 설문조사일수록 조사방법 다양화, 응답률 50% 이상 충족 등의 기준이 설정돼야 결과의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홈페이지와 모바일 설문조사의 경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개입이 쉬워져 여론이 왜곡될 수 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의 경우 전문 조사기관에 맡기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면 조사 설계를 제대로 했는지, 질문을 공정하게 객관성 있게 정했는지, 여론조사 취지를 충족하는지, 조사는 성실히 수행하는지 등을 사후감리하는 방법도 있다.

여수시의회 전창곤 의장은 “시민에게 사전에 여러 정보를 제공해 관련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 후에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 맞다. 별관 증축에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데 예산을 안내하지 않는 등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전 의장은 이어 “왜곡된 여론조사는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피해는 시민들이 볼 수밖에 없다”라면서 “여론조사가 정책 결정 근거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 여수시청 홈페이지 캡처.

 

횡성군, 여론조사 조례 제정

횡성군은 지난해 9월 정책 결정 근거로 여론조사가 사용되는 만큼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조례로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정책 및 사업 진행을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횡성군의회는 군민의 의견을 체계적이고 공정하게 수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군정 추진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고 행정의 민주성·공정성·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례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조례안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적용할 수 있는 사업과 적용할 수 없는 사업을 명시했다. 조사방법 역시 조례안으로 보장하고 있다. 조례안 제7조 1항에 따르면 군은 유무선 전화면접조사부터 전화자동응답(ARS), 인터넷, 우편,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직접 면접, 표적집단 면접조사 등 총 7가지의 조사방법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조례안에는 여론조사를 진행할 때 연령별, 지역별, 성별로 신뢰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단서조항도 명시했으며, 피조사자의 응답이 특정 시책에 편향될 수 있는 내용으로 질문지를 작성하면 안 된다. 법정의무사업과 군에서 설치·운용하는 기금으로 하는 사업과 주민투표법 제7조 제2항에 따라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항은 예외로 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특정 시책에 편향된 문장이나 어휘 사용 △특정 시책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 유발하는 내용 △피조사자에게 응답을 강요하거나,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응답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질문하는 행위 △피조사자의 성명이나 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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