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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향한 사랑과 진보의 힘

법의 규정으로 낙인 찍힌 채 평생을 살아온 여순항쟁 피해자와 유족, 그러나 그들을 구제하는 것 역시 '법'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를 공론화 할 수 있는 후보가 선택되야

  • 입력 2020.01.25 08:35
  • 수정 2020.01.25 09:06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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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우리는 깨어있는 시민”

이번 총선을 앞두고 본지와 <여수뉴스타임즈>가 공동으로 총선칼럼 필진을 운영해 동시게재한다. 여수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 지역 정치권의 혁신을 바라는 민심을 전달할 방침이다. 송은정 칼럼을 싣는다.
필자 송은정/ 문학박사. 작가

“내 꼬리도 물어줘.”

고양이 크림의 짧은 그림 이야기들로 꾸려진 미야니시 타츠야의 책 『크림, 너라면 할 수 있어!』 의 <이해하기> 에 나오는 말이다. 글 전부를 옮기면 이렇다.

내 친구 마우스는 쥐야. 친구들 중에 쥐는 마우스뿐이지. “으앙” “마우스 왜 그래?” “응, 크림이구나. 나, 개한테 꼬리를 물렸어.” “뭐 개한테?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마우스.” (개에게 다가가 꼬리를 내밀며) “자, 내 꼬리도 물어줘.” “으앙” 똑같은 처지가 되어보지 않으면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

비슷한 친구가 아니라 전혀 다른, 단 한 명의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크림은 친구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 바보 같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고양이 쥐 생각하듯 입에 발린 소리나 하는 일이야말로 아픈 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지 않은가.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 기관의 의원들은 꼬리를 내밀며 아픔을 공유하는, 진정한 ‘이해하기’를 바탕으로 진보적인 법을 세우기 바란다.

삶의 전반적인 것들이 법제화된 사회에서 법은 삶의 양식과 가치, 이상을 반영한다. 생명에 대한 권리, 육체·건강·행복·욕구 충족에 대한 권리,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와 우리가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라는, 자연스러운 추구로 알고 있는 것들이, 실상은 모두 법으로 관리되고 있으니 말이다.

눈앞에 닥친 문제에 급급하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협력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있어 법은 상당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법은 통치술의 도구가 되어 개별자들의 생활과 신체, 사유마저 규제하고 길들이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법이란 은총의 반대개념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법이 모두가 아닌 특수한 상태나 특정 영역에서의 차이를 바탕으로 수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소외되거나 배제 혹은 제외되는 존재들을 낳게 된다.

우리 가까운 곳에, 바로 그 법의 규정 때문에 70여년이 넘도록 낙인 찍혀 고통 받아온 여순항쟁의 피해자와 유족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을 구제하고, 잘못된 법을 바로 잡는 것도 결국 ‘법’이다.

지난 1월 20일 이뤄진 여순사건 재심재판의 최종 판결은, 한 번 집행된 법이라도 ‘하자가 매우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평가’될 수 있고, 그를 제대로 판단하고 선언할 수 있어야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공표했다.

여순사건 재심 무죄판결 당시의 법정 복도의 상황

‘정의에 따라 바로 잡아야’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할 필요성이 절박’하니 법이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사법부의 구성원으로서 ‘그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아주 오래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사과 후 김정아 판사가 울음을 터트리며 간신히 이어간 말이 있었다. 그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다’는, '그저 충실한 국민, 한 명의 철도원이었을 뿐이었다'는.

4·15총선에서는 이처럼 그 한 명을 헤아리는, 소수자의 처지에 아파할 줄 아는 이가 선택되기를 바란다. 그 헤아림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설득력을 발휘하기를. 이기심을 앞세운 효율이 아니라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의견을 공론화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감수성의 발현과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성을 고루 갖춘 이이기를 바란다. 치열한 연구와 경청 과정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후 그것들을 실현하고 세상을 바꾸는 정치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연대하여 힘을 집약시키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국민을 대신해 세를 모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재심재판을 이끈 김정아 판사는 세 분의 재심 청구인 중 돌아가신 두 분의 사정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재판의 지난한 과정을 견뎌낸 청구인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걸어야 하는 길이 아직도 너무나 멀고도 험난’한 무고한 희생자와 유족들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여순사건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재판을 위해 많은 자료를 모으면서 피해자들을 깊이 알아갔기 때문에 같이 눈물 짓고, 새로운 법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처럼 말할 수 없는, 말하지 못한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한 진보적인 변화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정치일 것이다. 황석영이 소설 『아우를 위하여』에서 부당한 폭력이 난무한 교실의 변화를 위해서 사랑과 진보가 필요하다고 한 것처럼.   
      송은정/ 문학박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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