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예부터 지리적 조건 때문에 왜구의 침략을 자주 받아 왔다.
고려 후기에는 수군 기지로서 진례만호, 내례만호가 여수에 있었다. 조선 전기 1479년(성종 10년)에 전라좌수영이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년)에 혁파되기까지, 417년 동안 남해 지역의 방어를 위한 조선 해군의 주요 진지로서 임무를 다해 온 '구국의 고장'이 바로 여수다.
발길 닿는 곳마다 충무공의 유적이 있는 여수지만, 오늘은 덕양에 왔다가 '역의암(易衣岩)' 앞을 지나며 역의암 설명판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을 적어 봤다.
역의암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첫 번째 전설은 "여수읍지"에서 볼 수 있다.
'임진난 때 이충무공이 갑자기 많은 왜적을 만나자 백성과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푸른빛과 붉은 빛의 옷을 나누어 입고 어지럽게 서로 바꾸게 하니 왜놈들이 바라보고는 물러가 버렸다.'
순천에서 덕양으로 들어오는 입구 오른 쪽에 있는 '역의산'은 덕양 뒷산이며, 묘도 쪽 바다 방향에서 잘 보인다. 해발 160m의 이 산 기슭에는 10m 높이의 역의암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이 바위에서 병졸들에게 옷을 갈아 입히는 위병술을 썼다고 전해온다.
왜적들이 쳐들어 올 때, 우리 군사의 수가 적으니 그 수를 부풀려 겁을 주려고 여자들에게 군복을 입혀 산꼭대기를 순회하게 했다. 처음에는 검은 옷을 입고 나중엔 붉은 옷, 푸른 옷을 입고 돌았다. 그 후 '옷을 바꿔 입은 바위'라 해서 역의암이 되었다.
두 번째 전설은 "강남악부"에 실려 있다.
'임진왜란 때 한 女妓(기생)가 이 바위까지 쫓아온 왜군에게 붙잡히자 오욕을 물리치고 투신하여 죽었다.'
덧붙이자면 지금은 이곳 역의암 앞이 육지이지만 옛날에는 바다였다.
일제가 1925년에 화치에서 애양원으로 이어진 간척지 제방을 만들었는데, 십리방천을 쌓은 이후로 대포에서 여수석보까지 여수 지역에서 가장 넓은 들판이 생기면서 이곳도 육지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