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 봉화대 봉연대
봉수대 봉화대 봉연대
우리나라는 옛날로부터 통신수단으로 불과 연기를 이용하였다. 이 통신수단으로 이용하던 곳을 봉수대, 봉화대, 봉연대라고 불렀었다. 통신망은 직봉과 간봉이 있었다.
직봉은 각 지방과 중앙과의 통신망을 말하는데 여수에서 서울에 이르는 직봉는 여수시 만흥동 봉화산(422m)의 봉화산봉수대를 기봉(基烽)으로 백야곶봉수--흥양 기장산봉수--장흥 전일산봉수--서해안을 거쳐--서울 남상봉수애에 이르렀다. 직봉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펼쳐 솟아있는 지리산 때문에 부득이 서해안으로 돌아 전달되어지만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하니 빠른 샘이었다.
간봉은 오관오포 즉 방답, 발포, 녹도, 여도, 사도, 보성, 광양, 흥양, 낙안, 순천 등의 통신이 돌산 죽포 봉화산 기점으로 모이면 거기서 다시 전라좌수영 본영 봉수인 봉화산 보수로 연락되어 접수되고 다시 명령이 내리면 역순으로 전달된다.
당시 여수지방의 봉수대는 만흥동 봉화산 봉수대, 종고산 북봉연대, 돌산 죽포 봉화산봉수대, 백야곶봉수대, 진례봉수대, 안도봉수대, 주삼리 전봉산봉수대 등이 있었다고 한다.
종고산 북봉연대(北烽煙臺)에 얽힌 전설을 들어보면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 병선이 5월 3일 새벽 첫출전을 하여 5월7일 옥포해전을 치루던 사흘 동안 종고산이 웅-웅 하고 울렸다는 말을 듣고 승전하고 돌아온 충무공은 이번 승전을 우리가 열심히 싸워 승리한 줄 알았더니 하늘과 종고산 산신령의 가호가 있었구나. 종고산 봉우리에 하늘과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낼 이층 대를 지으라고 명하니 이것이 북봉연대이며 고지도에도 선명히 나와 있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