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구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 안도 조개더미 출토 토기
- 안도 조개더미 출토 토기편
- 돌칼
- 돌도끼
개설
신석기시대는 후빙기의 새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해 식량을 생산하게 됨에 따라 인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다.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유럽 중심의 개념보다는 넓은 의미로 정의되는 개념에 해당한다. 즉, 홍적세 이후 최초의 토기 출현으로부터 금속기 사용 전까지 주로 어로와 수렵·채집에 의해 전개된 토기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한국의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문화로 빗살무늬 토기 문화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한반도의 유적은 약 130개소에 이른다. 이 유적들은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고, 주로 큰 강가나 해안가·호숫가·섬 등에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은 분포 양상만 보아도 당시의 생활이 어로에 크게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낚시 바늘이나 어망추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신석기시대 후기의 농경을 입증하는 유적은 아직 1, 2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극히 한정된 지역에 국한된 맹아적(萌芽的)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한국의 신석기 문화는 어로와 수렵·채집에 의해 전개된 문화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측정된 방사성탄소연대의 최고(最古) 연대는 B.C. 8,000년경의 제주 고산리 유적의 예를 들 수 있다.
가장 늦은 연대는 B.C. 1,000년경의 경기도 시도 유적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B.C. 8,000년경부터 B.C. 1,000년경까지 약 7,000년간 존속하였다. BC 1,000년 전후에는 본격적인 농경을 배경으로 청동기 문화가 융성하였다. 이로써 신석기 문화의 대부분은 강력한 청동기 문화에 그대로 흡수·동화되었으며, 일부 도서 지역에서만 신석기적 요소를 계속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과 유물
발굴된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1989년에서 1990년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물은 융기문토기·압인문토기·침선문토기·점렬문토기·주칠토기·무문토기 등의 토기류와 밀개·찍개·자르개·긁개·새기개·도끼·갈돌·숫돌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주거지 2기도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지름 460~540㎝의 규모로 패각층 위에 진흙을 다져 만들었으며, 둥근 화덕을 갖춘 원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1호 주거지의 경우, 화덕자리 근처에서 빻거나 갈아서 가루를 만들 수 있는 모루돌과 갈판, 갈돌이 일괄로 출토되어 주목되었다. 송도 조개더미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4285±195 B.P. 4270±200 B.C.로 제시되었다.
1992년과 1993년 여수시 도서에 대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져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 22개소와 유물산포지 3개소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이로써 여수시 도서 지역이 경상남도 해안 지역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문화 중심지임이 밝혀졌다. 조사된 유적의 입지적 조건은 대부분 해풍에 안전하고 간석지가 잘 발달하여 각종 어패류의 서식에 적합한 만입부에 위치해 있었다. 채집된 유물은 송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하며, 비교적 이른 시기로 편년되는 융기문 토기가 상당량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사]1 (국사편찬위원회, 1977)
- 김원룡, [한국고고학개설](일지사, 198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